[한국文化(문화)론] 한국현대패션 (1953 - )
페이지 정보
작성일 23-01-30 13:34
본문
Download : [한국문화론] 한국현대패션 (1953 - ).hwp
이시기에는 `파리` 모드중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디자인이 들어와 H라인,A라인 등이 유행했다.
처음에는 수입품에 의존했지만 1959년부터 국내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나일론전성기가 시작되었다.
[한국文化(문화)론] 한국현대패션 (1953 - )
한국현대패션 (1953 - )
다. 또한 한복개량을 위해 많은 시도를 하였으나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다. 속살이 비치는 블라우스, 원피스, 란제리뿐 아니라 나일론 스타킹도 한몫했으며 한복지로도 많이 쓰였다.
외국영화의 보급과 함께 여주인공의 패션이 일반여성의 복장에도 effect(영향) 을 미쳤다. 타이트 스커트와 폭넓은 플레어 스커트가 유행했고 특히 허리를 가늘어 보이려 하였으며 페티코트를 받쳐 입어 플레어 스커트를 부풀리기도 했다.
1950년대 중반기에는 `로마의 휴일(1953년 제작)`의 effect(영향) 으로 헵번 스타일, 즉 넓은 플레어 스커트와 숏 커트 헤어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짧고 다리에 꼭 낀 맘보바지가 나타났다.
[한국문화론] 한국현대패션 (1953 - )
설명
[한국文化(문화)론] 한국현대패션 (1953 - )
순서
②. 맞춤복 시대(1961 - 1970)
5.16이후 재건국민운동 본부의 국민생활계몽운동에 따라 생할의 간소화, 합리화를 추구하면서 남성의 `재건복`이 등장하였으며 의류수입이 금지됨에 따라 국산화의 길이 다져지게 되었다.
1960년대 초반에는 튜블러 형의 오버 코트나 색 드레스가 유행했다.
[한국문화론] 한국현대패션 (1953 - )
전후 한국사회는 개방의 물결과 함께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다.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뉴룩(New Look) 등이 3 - 4년 뒤늦게 유행하는 경향을 보였다. 1956년에 노라노 여사가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다.
1950년대 중반 우리나라 의생활에 나일론의 출현은 특기할만한 change(변화)였다.
①. 양advantage(장점) 시대(1953 - 1960)
이 시기의 패션은 그저 미군구호물자에 의존하는 형편이었다.
![[한국문화론] 한국현대패션 (1953 - )-1226_01.gif](https://sales.happyreport.co.kr/prev/200708/%5B%ED%95%9C%EA%B5%AD%EB%AC%B8%ED%99%94%EB%A1%A0%5D%20%ED%95%9C%EA%B5%AD%ED%98%84%EB%8C%80%ED%8C%A8%EC%85%98%20(1953%20-%20)-1226_01.gif)
![[한국문화론] 한국현대패션 (1953 - )-1226_02_.gif](https://sales.happyreport.co.kr/prev/200708/%5B%ED%95%9C%EA%B5%AD%EB%AC%B8%ED%99%94%EB%A1%A0%5D%20%ED%95%9C%EA%B5%AD%ED%98%84%EB%8C%80%ED%8C%A8%EC%85%98%20(1953%20-%20)-1226_02_.gif)
![[한국문화론] 한국현대패션 (1953 - )-1226_03_.gif](https://sales.happyreport.co.kr/prev/200708/%5B%ED%95%9C%EA%B5%AD%EB%AC%B8%ED%99%94%EB%A1%A0%5D%20%ED%95%9C%EA%B5%AD%ED%98%84%EB%8C%80%ED%8C%A8%EC%85%98%20(1953%20-%20)-1226_03_.gif)


그리고 1960년대를 전후해서 명동 주변에 양advantage(장점) 이 등장하여 이때부터 우리나라에도 디자이너가 등장하게 되었다.
레포트 > 사회과학계열
Download : [한국문화론] 한국현대패션 (1953 - ).hwp( 61 )
테일러 칼라 또는 라운드 네크라인의 단조로운 디자인과 신체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실루엣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. 1955년에 창간된 여성잡지 `여원(女苑)`도 `모드`란에 서구패션을 게재하기 시작했다. 1957년경부터 스커트도 짧아지기 시작했다. 정비석의 `자유부인`이 변혁기의 새로운 화제를 낳았으며 맘보, 차차차, 지르박 등 사교춤 등이 유행하면서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시켰다.